비트겐슈타인은 천재이다. 이렇게 정의하는 것이 엄청 싫고 무식한 일이지만 이 사람을 표현하는 명확한 하나는 천재이며 재벌 2세이다. 아버지가 부자였는데 오스트리아의 철강왕이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삼성 정도의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돈벌이하는 것에 귀재여서 정치와 사회 문화를 조절해야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완벽한 기업가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했다. 이 부부는 많은 비엔나의 예술가를 후원했는데, 브람스, 슈만, 말러, 발터, 쇤베르크, 구스타프 클림트가 있다. 이 둘 사이에서 나온 형재, 자매들의 비극은 남자들은 모두 엄마를 닮고 여자들은 모두 아빠를 닮았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비트겐슈타인은 형재들이 모두 비극적인 삶을 살게되는데, 그래서 막내인 비트겐슈타인을 영국으로 보낸다. 공학을 공부하기 위해서도 있었지만 비엔나의 예술적인 풍토가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판단하에 바다 건너 영국으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이 선택이 결국 버트런트 러셀을 만나게 되며, 거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얼마나 극적인 삶을 살았냐 하면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었던 기록이 남아있다. 근데 무공훈장을 받았다. 이 사람을 볼 때 자살충동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보면 어느 정도 그를 이해할 실마리가 잡힌다. 하지만 이 1차 대전에서 문제적인 책이 한 권 나온다. 『논리철학 논고』 이 책만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이 사람을 친구와 가족들이 포로 수용소에서 돈으로 꺼내려고 할 때 나가기를 거부했다. 그 이유는 부하들과 동료들을 두고 혼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참 멋있고 매력적인 사람이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 채권을 사놓은 아버지 덕분에 세계적인 부자가 되는데, 이 돈을 형제자매와 예술가들에게 나누어 줬다.
논리 철학 논고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이 갈라지는 부분이 있다. 러셀이 말했다. ‘당신이 가진 문제가 논리적인 것이면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지만, 윤리적인 것이라면 해결해 줄 수 없네.’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은 같은 겁니다.’ 하고 방을 나갔다고 한다. 이 말은 논리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을 같은 선상에 놓는다고 볼 수 있다. 논리적인 것은 언어라고 생각하고 윤리적인 것을 삶의 영역이라고 본다면 청년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같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나누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사실들의 그림들을 만들어낸다…. 명제는 현실의 그림이다. 명제는 우리가 생각하는바 현실의 모델이다…. 그림 속에서 그림의 요소들은 대상들에 대응한다…. 그림 속에서 그림의 요소들은 대상들에 대응한다…. 그림은 그 요소들이 일정한 방식으로 서로 관계 맺는 데서 이루어진다.
『논리철학 논고』,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은 명제, 즉 언어는 현실을 보여주는 그림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지금은 보통 그림이론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언어는 세계의 사실들과 그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에게 언어라는 것은 결국 자신 혹은 타자 모두 지각이 가능한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어야만 했다. “자동차가 백화점 건물로 들어가고 있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여기서 자동차, 백화점, 들어감 등의 말은 정확히 세계의 어떤 구체적 사실들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언어만이 유일하게 타자들에게 말해질 수 있는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상대방은 시선을 자동차에 두면서 내가 보았던 것을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비트겐슈타인은 외부 대상에 대해 그림처럼 묘사할 수 있는 언어만을 진정한 언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처럼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논증하다가 드디어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사실 이 책의 대부분은 말할 수 있는 것만을 다루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게 된 셈이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것은 드러나 난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 그러므로 자연과학의 명제-그러므로 철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어떤 것-들 이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다른 어떤 사람이 형이상 항적인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할 때는 언제나, 그가 나의 명제들 속에 있는 어떤 기호들에도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못했음을 입증해주는 것 — 이것이 본래 철학의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논리철학 논고』, 비트겐슈타인
이 사람은 정말 절실하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다. 그것들이 말함 즉 언어로 더럽혀 지기를 바랐던 사람이다. 20대 천재가 집필한 20세기 철학계 최고의 문제작이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그는 철학을 뒤덮고 있는 구름 전체를 한 방울의 빗방울로 만들어 날려버렸다.
출처: 철학 대 철학, 강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