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제학과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은 두 가지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나는 경제학 교과서 속 이론적 모델인 ‘이콘’, 또 다른 하나는 실제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이다. 이콘은 완벽하게 합리적이며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결정을 내린다. 반면, 인간은 편향과 감정에 영향을 받아 때로는 비합리적이기도 하다. 이 차이는 단순히 이론과 현실의 괴리가 아니라, 우리 삶의 많은 선택과 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콘과 인간: 완벽과 현실의 차이
이콘은 모든 선택을 최적화할 수 있는 이상적 존재로 묘사된다. 예를 들어, 모든 옵션을 완벽히 분석하고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가정한다. 하지만 실제 인간은 제한된 인지 능력, 시간, 정보로 인해 합리적 선택을 하지 못할 때가 많다. 이는 심리적 편향과 무의식적인 자동 시스템에 의해 강화된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을 처음 구입했을 때 기본 설정값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 이는 기본값 변경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과 타성 때문이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 대부분은 제공된 기본 설정값을 유지하며 이를 변경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간이 기본 설정값에 의존하는 이유와 넛지가 작동하는 기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심리적 편향: 자동 시스템의 한계
인간은 의사결정을 내릴 때 빠르고 자동적인 사고 시스템을 활용한다. 이는 즉각적인 반응을 가능하게 하지만, 종종 편향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계획 오류(planning fallacy)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예상보다 짧은 시간 안에 끝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 다른 사례로는 낙관주의 편향이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일어날 긍정적인 결과를 과대평가하고, 부정적인 결과는 과소평가하는 경향이다. 이러한 편향은 금융 결정, 건강 관리, 그리고 개인의 목표 설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면,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기 위해 넛지를 설계할 수 있다.
타성과 현상 유지 편향: 변화의 어려움
사람들은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 가입 과정에서 ‘자동 가입’을 기본 설정으로 둔 회사들은 직원들의 연금 가입률이 현저히 높아지는 것을 확인했다. 기본 설정값을 변경하지 않고 유지하려는 성향이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는 개인의 편의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에도 기여할 수 있다.
행동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이콘과 인간의 차이를 이해하는 행동 경제학은 인간의 실질적인 행동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설계한다. 예를 들어, 선택 설계(choice architecture)는 사람들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환경을 조정하는 것이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거나 규제를 강화하는 대신, 선택의 맥락을 전략적으로 설계하여 인간의 한계를 보완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자동 가입 시스템을 활용한 퇴직연금 정책을 통해 저축률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는 인간의 현상 유지 편향과 자동 시스템에 기반한 설계의 효과를 입증한 대표적인 사례다.
사례를 통해 본 이콘과 인간의 차이
한 연구에서는 사람들이 투표소에 제공된 펜의 색깔이 그들의 투표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콘이라면 이런 사소한 요인에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실제 인간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인간이 감정적이고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또 다른 사례로는 공공장소에서의 사회적 규범이 있다. 쓰레기통 주변이 깨끗할 때 사람들은 쓰레기를 덜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는 인간이 주변 환경과 사회적 맥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콘과 달리 인간은 이러한 미묘한 단서에 반응하며 행동한다.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넛지의 힘
넛지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이를 보완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다. 기본 설정값을 활용하거나, 선택을 더 쉽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방식은 인간의 편향을 고려한 설계다. 이러한 넛지 전략은 비만, 저축 부족, 에너지 소비 증가와 같은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과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결론: 인간 중심의 선택 설계
이콘과 인간의 차이를 이해하면, 개인과 사회 모두에게 유익한 선택 설계를 구현할 수 있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넛지 전략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질적인 해결책으로 자리 잡고 있다. 행동 경제학은 단순한 이상이 아닌 현실적인 행동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