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여전히 거대한 계기판을 사용할까? 현대 기술의 역설

비행기의 조종실이든 산업 시설물이든, 통제실은 대개 거대한 계기판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현대 과학자들이 이러한 통제실을 볼 때 첫 느낌은 전근대적이며 구시대적이라는 것이다. 신기술은 과거의 기계기술 시대에 요구되었던 거대 규모의 통제 시스템의 필요성을 제고한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구시대적인 대규모 통제실과 거대한 계기판은 그 나름대로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 임무가 분산되어 있을 경우 이러한 이점은 더욱 빛을 발한다. 비록 대부분의 공장과 비행기는 평상시에는 단 한 사람에 의해 통제가 가능하지만,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업무를 분담할수록 더욱 효과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

공유된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관련되는 사람들이 전체적인 상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소휘 ‘상황 지각’이라고 한다. 비행기 조종사나 통제실의 모든 담당자들은 모두 상황의 전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한 규모의 계기판이 훨씬 더 유용하다.

공유된 과제와 의사소통의 속성에 관한 것이다. 반대로 어떤 요소들이 이를 비효율적이며 비능률적이 되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대부분의 경우 효과적으로 공유된 행위의 핵심적인 속성들은 종래의 작업 방식에서 ‘우연히’ 파생된 것처럼 보인다. ‘우연히’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비록 협동 과제의 환경을 설계할 당시에 이를 의식적으로 염두에 두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절차 자체가 정말 우연히 발생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은 처음의 형태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련의 작은 변화들이 발생하며 이는 각각 절차를 조금씩조금씩 변화시켰을 것이다. 일을 보다 능률적으로 수행하는 데 성공적이었던 변화는 수용하고, 역효과를 추래했던 변화는 버려졌을 것이다. 아무도 이 과정을 책임지고 있지 않고 인식하고 있지 않더라도 이는 자연스러운 진화과정이며 대단히 효율적인 결과를 이끌어낸다.

오랜 세월 동안 지켜져 온 관행이 아무리 비효율적인 인상을 주더라도 단번에 바꾸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신기술은 구시대적인 방법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을 제공해줄 수 있따. 과거의 통제실은 분명히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을 사용하고 있따. 사람들이 점차 좋아하게 되는 속성들까지도 과학기술의 우연적인 부산물이며 과제 수행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신기술의 도입으로 우리의 인생은 보다 생산적이고 쾌적해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어느 부분이 과제의 사회적이고 분산된 본질에 가까운지 어느 부분이 관련이 없거나 해를 끼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고, 매끄러우며, 효율적인 상호작용은 모든 작업 상황이 바라는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은 무의식 중에 일어나기 때문에 이를 제거하기 전에는 그 필요성을 인식할 방법이 없다는데 있다.

결국 신기술도 이와 같은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다. 문제는 단지 변화가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성급하게 변화를 단행한다면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도널드 노먼의 디자인 심리학, 도널드 노먼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종종 거대한 계기판과 통제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비행기 조종석, 발전소 제어실, 심지어 가정용 보일러실까지 – 이러한 공간들은 여전히 수많은 버튼, 스위치, 게이지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현대 기술의 발전 속도를 고려할 때 다소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도 이러한 ‘구식’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을까요? 이 글에서는 이 흥미로운 역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상황 인식의 중요성

거대한 계기판과 통제실의 가장 큰 장점은 ‘상황 인식'(situation awareness)을 높인다는 것입니다[1]. 비행기 조종사나 발전소 운영자와 같이 복잡한 시스템을 다루는 사람들에게는 전체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큰 화면과 여러 계기들은 이러한 전체적인 조망을 가능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 관제실을 생각해봅시다. 벽면 전체를 차지하는 거대한 노선도와 각종 정보 디스플레이는 관제사들이 전체 지하철 네트워크의 상황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문제 상황 발생 시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협업과 의사소통의 촉진

대형 계기판과 통제실의 또 다른 이점은 팀 협업과 의사소통을 촉진한다는 것입니다[1]. 여러 사람이 동시에 같은 정보를 보고 논의할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상황에서의 의사결정이 더욱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일상적인 예로, 대형 회의실의 프로젝터 스크린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모든 참석자가 동일한 정보를 큰 화면으로 함께 볼 때, 아이디어 교환과 토론이 더욱 활발해지는 것을 경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진화의 산물

이러한 시스템들은 오랜 시간에 걸친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1]. 수년간의 경험을 통해, 가장 효과적인 방식들이 자연스럽게 선택되고 발전해 온 것입니다. 따라서 얼핏 보기에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요소들도 실제로는 중요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방에서 사용하는 가스레인지를 생각해봅시다. 디지털 터치 패널보다 물리적인 손잡이가 여전히 선호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리 중 기름이 묻은 손으로도 쉽게 조작할 수 있고, 시각적 확인 없이도 촉각만으로 불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사용자들의 필요에 맞춰 진화해 온 결과입니다.

신기술 도입의 위험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1]. 겉보기에 더 효율적으로 보이는 시스템이라도, 기존 시스템의 중요한 특성들을 간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작은 변화가 예상치 못한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스마트홈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음성 명령으로 모든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매우 편리해 보입니다. 하지만 정전이 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끊겼을 때, 또는 단순히 음성 인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우리는 기본적인 기능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전통적인 물리적 스위치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합니다.

무의식적 상호작용의 가치

효과적인 인터페이스는 사용자가 거의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1]. 이는 특히 스트레스가 높은 상황이나 빠른 반응이 필요한 경우에 중요합니다.

자동차 대시보드를 생각해봅시다. 운전 중에는 도로에 집중해야 하므로, 각종 제어장치들을 보지 않고도 조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차량에서 여전히 물리적 버튼과 다이얼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터치스크린은 시각적으로 더 세련되어 보일 수 있지만, 운전 중 사용하기에는 덜 직관적이고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점진적 변화의 중요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는 점진적인 접근이 중요합니다[1]. 기존 시스템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의 이점을 통합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스마트폰의 진화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초기의 스마트폰들은 물리적 키보드를 완전히 제거하고 터치스크린으로 대체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용자들이 타이핑의 촉각적 피드백을 그리워했습니다. 이에 대응해 제조사들은 화면상의 가상 키보드에 진동 피드백을 추가하는 등의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는 새로운 기술과 기존의 사용자 경험을 조화롭게 결합한 좋은 예입니다.

결론

거대한 계기판과 통제실은 단순히 구시대의 유물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복잡한 시스템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팀 협업을 촉진하며, 중요한 상황 인식을 제공하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할 때는 이러한 기존 시스템의 장점을 신중히 고려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이러한 원칙은 적용됩니다. 스마트홈 기기를 도입할 때, 새로운 자동차를 구매할 때, 심지어 주방 가전을 선택할 때도 최신 기술만을 쫓기보다는 사용 편의성, 안정성, 직관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결국, 기술의 진보는 단순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와 경험을 깊이 이해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것에 있습니다. 때로는 겉보기에 ‘구식’으로 보이는 솔루션이 실제로는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용:
[1] https://www.nngroup.com/articles/collaborating-stakeholders/
[2] https://www.nngroup.com/topic/collaboration/
[3] https://www.nngrou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