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감독은 전체 시나리오의 흐름을 파악하고, 적절한 시점에 각 배우에게 “지금부터 당신의 장면을 연기해 주세요”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배우는 자신의 역할에 맞는 특정 연기를 하고, 연기가 끝나면 다시 감독에게 흐름을 넘깁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한 편의 복잡하고 긴 영화가 완성됩니다. 소프트웨어가 작동하는 방식도 이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여기서 영화감독의 역할을 하는 것이 메인 루틴(Main Routine)이고, 각 장면을 연기하는 배우의 역할이 바로 서브 루틴(Subroutine)입니다.
이 글에서는 프로그래밍의 가장 기본적인 실행 구조인 ‘루틴’에 대해 알아봅니다.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절차적 프로그래밍의 기초를 다지고 싶은 분, 또는 개발자와의 소통을 위해 프로그램의 동작 원리를 이해하고 싶은 기획자 및 관리자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메인 루틴과,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는 만능 해결사 서브 루틴의 관계를 통해 질서정연한 코드의 세계를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목차
- 루틴이란 무엇인가?: 프로그램의 작업 단위
- 메인 루틴 (Main Routine):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지휘자 🎬
- 서브 루틴 (Subroutine): 필요할 때 부르는 만능 해결사 🛠️
- 메인 루틴과 서브 루틴의 상호작용: 호출과 반환
- 왜 서브 루틴을 사용하는가?: 모듈화의 실현
- 루틴에서 함수와 프로시저로
- 결론: 질서 있는 코드의 첫걸음
루틴이란 무엇인가?: 프로그램의 작업 단위
루틴(Routine)은 가장 포괄적인 의미에서 ‘컴퓨터가 수행하는 일련의 작업 절차’를 의미합니다. 특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순서대로 배열된 명령어들의 집합으로, 프로그램 내에서 하나의 작업 단위로 간주될 수 있는 모든 코드 블록을 루틴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정해진 순서’나 ‘판에 박힌 일’을 의미하는 일상 용어 ‘루틴’처럼, 프로그램의 루틴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특정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러한 루틴은 프로그램의 목적과 구조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뉩니다. 하나는 프로그램이 시작될 때 단 한 번 실행되어 전체의 흐름을 책임지는 메인 루틴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할 때마다 여러 번 호출되어 사용되는 서브 루틴입니다. 이 두 루틴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복잡한 소프트웨어가 질서정연하게 동작하게 됩니다.
메인 루틴 (Main Routine):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지휘자 🎬
프로그램의 진입점(Entry Point)
사용자가 바탕화면의 아이콘을 더블 클릭하여 프로그램을 실행시키는 순간, 운영체제는 해당 프로그램의 ‘시작점’을 찾아 실행의 제어권을 넘겨줍니다. 이 최초의 시작점이자 프로그램의 생명이 시작되는 곳이 바로 메인 루틴입니다. 메인 루틴은 프로그램 전체에서 유일하게 단 하나만 존재하며, 프로그램이 종료될 때까지 전체의 흐름을 책임집니다.
C, C++, Java, C# 등 많은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이 메인 루틴이 main()
이라는 이름의 함수로 명시적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운영체제는 약속된 이름인 main()
함수를 찾아 실행하고, 이 main()
함수의 실행이 끝나면 프로그램도 종료됩니다. 즉, 메인 루틴은 프로그램의 시작과 끝을 정의하는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체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
메인 루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모든 세부적인 작업을 직접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흐름과 로직을 조율하고 관리하는 지휘자(Conductor)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직접 바이올린을 켜거나 트럼펫을 불지 않고, 각 악기 파트(서브 루틴)에 적절한 연주 시점을 지시하여 웅장한 교향곡을 완성하는 것과 같습니다.
잘 작성된 메인 루틴은 프로그램이 수행해야 할 큰 작업들을 순서대로 나열한 목차나 개요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로부터 데이터를 입력받는다 -> 데이터를 처리한다 -> 결과를 화면에 출력한다’와 같은 큰 그림을 그리고, 각 단계의 실제 작업은 해당 기능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서브 루틴을 호출하여 위임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메인 루틴의 코드만 보고도 프로그램 전체가 어떤 순서로 무엇을 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서브 루틴 (Subroutine): 필요할 때 부르는 만능 해결사 🛠️
특정 기능의 전문화
서브 루틴은 하나의 특정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독립적인 코드 블록입니다. ‘두 숫자의 합을 구하는 기능’, ‘이메일 주소 형식이 올바른지 검증하는 기능’, ‘사용자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는 기능’처럼, 명확하고 단일한 책임을 갖는 단위로 작성됩니다.
서브 루틴은 그 자체만으로는 실행되지 않으며, 메인 루틴이나 다른 서브 루틴에 의해 이름이 불려지는, 즉 ‘호출(Call)’되었을 때만 실행됩니다. 영화 속에서 감독이 “액션!”이라고 외치기 전까지 가만히 대기하는 배우처럼, 서브 루틴은 자신의 역할이 필요한 순간에 호출되어 임무를 수행하고, 임무가 끝나면 실행의 제어권을 다시 자신을 호출한 곳으로 돌려줍니다.
호출(Call)을 통한 재사용
서브 루틴의 가장 강력한 특징은 재사용성입니다. 한번 잘 만들어진 서브 루틴은 프로그램의 여러 다른 위치에서 필요할 때마다 몇 번이고 다시 호출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용자로부터 입력받은 숫자에 쉼표(,)를 찍어주는 addCommasToNumber()
라는 서브 루틴을 만들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서브 루틴은 상품 가격을 표시할 때, 은행 계좌 잔액을 보여줄 때, 게시물의 조회 수를 보여줄 때 등 숫자를 형식에 맞게 출력해야 하는 모든 곳에서 재사용될 수 있습니다.
이는 ‘같은 코드를 반복해서 작성하지 말라(DRY, Don’t Repeat Yourself)’는 프로그래밍의 중요 원칙을 실현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만약 서브 루틴이 없다면, 쉼표를 찍어주는 동일한 로직을 필요한 모든 곳에 복사해서 붙여넣어야 할 것이며, 이는 코드의 양을 불필요하게 늘리고 유지보수를 매우 어렵게 만들 것입니다.
메인 루틴과 서브 루틴의 상호작용: 호출과 반환
호출 스택(Call Stack)의 개념 📚
프로그램의 제어 흐름이 메인 루틴과 여러 서브 루틴 사이를 어떻게 이동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호출 스택(Call Stack)의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호출 스택은 프로그램이 현재 실행 중인 루틴들의 작업 내역을 순서대로 기록하는 메모리 공간입니다.
이 과정은 마치 우리가 책상 위에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같습니다.
- 메인 루틴이 작업을 시작합니다. (책상 위에 ‘주요 업무’ 서류를 펼침)
- 메인 루틴이 서브 루틴 A를 호출합니다. 이때 메인 루틴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어디까지 했는지 ‘주요 업무’ 서류에 책갈피를 꽂아둔 채 그 위에 ‘A 업무’ 서류를 올려놓습니다.
- 서브 루틴 A가 작업을 하다가, 다시 서브 루틴 B를 호출합니다. A는 하던 일을 멈추고 ‘A 업무’ 서류에 책갈피를 꽂은 뒤, 그 위에 ‘B 업무’ 서류를 올려놓습니다.
- 서브 루틴 B가 작업을 마칩니다. ‘B 업무’ 서류를 치우고, 바로 아래에 있던 ‘A 업무’ 서류의 책갈피 위치부터 다시 작업을 이어갑니다.
- 서브 루틴 A가 작업을 마칩니다. ‘A 업무’ 서류를 치우고, 맨 아래에 있던 ‘주요 업무’ 서류의 책갈피 위치부터 다시 작업을 이어갑니다.
이처럼 가장 마지막에 호출된 루틴이 가장 먼저 종료되는 ‘후입선출(LIFO, Last-In, First-Out)’ 구조로 작동하는 것이 바로 호출 스택의 핵심 원리입니다.
인자(Argument)와 반환값(Return Value)
루틴끼리 작업을 주고받을 때는 데이터도 함께 전달해야 합니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인자와 반환값입니다.
- 인자(Argument) 또는 매개변수(Parameter): 호출하는 쪽(Caller)에서 호출되는 쪽(Callee)으로 넘겨주는 데이터입니다.
calculateSum(5, 3)
을 호출할 때,5
와3
이 바로 인자입니다. 이는 마치 요리사(서브 루틴)에게 “계란 2개와 밀가루 500g으로(인자) 빵을 만들어 줘”라고 재료를 주는 것과 같습니다. - 반환값(Return Value): 호출된 서브 루틴이 자신의 작업을 마친 후, 호출한 쪽으로 돌려주는 결과 데이터입니다.
calculateSum(5, 3)
이8
이라는 결과를 돌려주는 것이 반환값입니다. 요리사가 완성된 빵(반환값)을 건네주는 것과 같습니다.
왜 서브 루틴을 사용하는가?: 모듈화의 실현
코드의 재사용과 중복 제거
서브 루틴을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서 언급했듯이 코드의 재사용성을 높여 중복을 제거하기 위함입니다. 중복 코드는 소프트웨어의 품질을 저해하는 가장 큰 적 중 하나입니다. 만약 동일한 코드가 10군데에 흩어져 있다면, 해당 로직을 수정해야 할 때 10군데를 모두 찾아서 똑같이 수정해야 합니다. 하나라도 놓치면 버그가 발생하게 됩니다. 서브 루틴을 사용하면, 오직 해당 서브 루틴 하나만 수정하면 이를 호출하는 모든 곳에 변경 사항이 자동으로 반영되므로 유지보수가 매우 용이해집니다.
복잡성 감소와 가독성 향상
서브 루틴은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작고 관리 가능한 단위로 나누는 ‘모듈화’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입니다. 수백 줄에 달하는 코드가 하나의 거대한 루틴 안에 뒤섞여 있는 것보다, 각 기능별로 잘 나뉜 여러 개의 서브 루틴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initializeProgram();
loadUserData();
processTransactions();
generateReport();
terminateProgram();
위와 같이 잘 명명된 서브 루틴 호출로 이루어진 메인 루틴은, 코드 자체가 하나의 잘 쓰인 목차처럼 기능하여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는 코드의 가독성을 극적으로 향상시켜 협업과 유지보수를 용이하게 만듭니다.
쉬운 테스트와 디버깅
잘 만들어진 서브 루틴은 독립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습니다. 프로그램 전체를 실행하지 않고도, 특정 서브 루틴에 다양한 입력값(인자)을 주어 그 결과(반환값)가 올바른지 검증할 수 있습니다. 이는 버그를 조기에 발견하고 수정하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만약 프로그램에서 버그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범위를 특정 서브 루틴 내부로 좁힐 수 있기 때문에 디버깅 과정 또한 훨씬 수월해집니다.
루틴에서 함수와 프로시저로
서브 루틴의 두 가지 얼굴: 함수와 프로시저
서브 루틴은 그 역할에 따라 좀 더 구체적으로 함수(Function)와 프로시저(Procedure)로 구분되기도 합니다. 이 구분은 전통적인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더 엄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 함수 (Function): 특정 연산을 수행한 후, 반드시 결과값을 반환(return)하는 서브 루틴입니다. 수학의 함수 f(x) = y처럼, 입력값(x)을 받아 결과값(y)을 내놓는 역할에 충실합니다.
calculateSum()
이나getUserName()
과 같이 무언가를 계산하거나 조회하여 그 결과를 돌려주는 경우가 함수에 해당합니다. - 프로시저 (Procedure): 특정 작업을 수행하지만, 결과값을 반환하지 않는 서브 루틴입니다. 반환값 없이 단지 정해진 절차(procedure)를 수행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화면에 텍스트를 출력하는
printMessage()
나 파일을 삭제하는deleteFile()
과 같이 시스템의 상태를 변경하거나 특정 동작을 실행만 하는 경우가 프로시저에 해당합니다.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에서의 의미
Python, JavaScript 등 많은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에서는 함수와 프로시저를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고, ‘함수(Function)’라는 용어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환값이 없는 경우에도 ‘아무것도 반환하지 않는(void, null, None 등) 함수’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용어가 통합되었을 뿐, 서브 루틴이 ‘값을 계산하여 반환하는 역할’과 ‘특정 동작을 수행하는 역할’로 나뉜다는 근본적인 개념은 여전히 유효하며, 이를 이해하는 것은 코드의 역할을 명확히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결론: 질서 있는 코드의 첫걸음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푸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작점을 찾아 한 가닥씩 차근차근 풀어내는 것입니다. 프로그래밍에서 메인 루틴과 서브 루틴의 구조는 바로 이 실타래를 푸는 질서와 규칙을 제공합니다. 메인 루틴이라는 명확한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서브 루틴이라는 잘 정의된 작업 단위들을 순서대로 호출하고 실행하는 구조는 혼돈스러운 문제에 질서를 부여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입니다.
영화감독이 시나리오에 따라 배우들을 지휘하듯, 잘 구조화된 프로그램은 명확한 메인 루틴이 전문화된 서브 루틴들을 조율하여 복잡한 목표를 달성합니다. 이처럼 거대한 문제를 작고 재사용 가능한 단위로 나누어 해결하는 루틴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깨끗하고, 유지보수하기 쉬우며, 확장 가능한 코드를 작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첫걸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