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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실업률, 감춰진 노동 시장의 진실

    자연실업률(Natural Rate of Unemployment)은 일반적으로 ‘경기적 충격이 없다면, 노동시장이 안정된 상태에서 나타나는 실업률’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마찰적 실업(이직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적 실업)과 구조적 실업(산업 변화나 기술 변화로 인해 특정 직군이 사라져 발생하는 실업) 등을 합산해, 장기적으로 관찰되는 ‘평균 수준의 실업률’입니다. 이 개념의 등장은 “완전고용이라고 해서 실업률 0%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 수준의 실업은 불가피하다”라는 사실을 경제학적으로 정리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자연실업률이 낮다는 것은, 마찰적·구조적 실업률이 그만큼 낮으며, 표면적으로 노동시장이 활발하고 고용이 양호하다는 신호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실제 노동현장을 살펴보면, 자연실업률이 낮다는 사실이 곧바로 ‘근로자가 일하기에 좋은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는 뜻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자연실업률이 낮으려면, 이직 과정이 짧고 구조적 실업이 적어야 하겠지만, 그 뒤에는 “기업이 근로자를 손쉽게 해고하고, 적은 비용으로 신입을 뽑는” 제도적·문화적 토양이 자리잡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더불어 실업률이 낮아 보이도록 비정규직이나 초단시간 근로자가 다수 편입되어 있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유연하고 편리하겠지만, 노동자 측면에서는 임금 협상력이 떨어지고, 근무 여건이 불안정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실업률이 낮다는 단순 지표만으로 “노동시장이 얼마나 건강하고 근로자가 보호받고 있는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이처럼 일자리의 안정성과 임금 수준, 복지와 산업 구조 등 여러 요소가 함께 고려되지 않은 채, “낮은 자연실업률 = 노동시장 선진화”라는 공식으로만 파악하면 오판하기 쉽습니다. 노동통계 지표는 수치로 단순화되어 있지만, 그 이면에는 파견·계약직 확대나 임시·초단기 채용 등 다양한 변수가 뒤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자연실업률이 낮아서 마치 노동시장이 ‘완벽히’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정작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근무 환경이 열악하거나 미래가 불투명하다면, 이는 바람직한 상태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자연실업률이라는 지표를 읽을 때는 그 나라의 고용 제도, 산업 구조, 근로자 보호 수준, 임금 분포 등을 함께 살펴야 노동시장의 진짜 모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연실업률의 이론과 현실

    자연실업률 개념의 배경

    자연실업률이라는 용어는 주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과 에드먼드 펠프스(Edmund Phelps) 같은 경제학자가 발전시켰습니다. 경기순환적 요소를 제거한 상태에서, 노동수요와 노동공급이 장기 균형을 이루었을 때의 실업률을 가정한 것이죠. 이때 실업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이 작용합니다.

    1. 마찰적 실업(Frictional Unemployment): 구직자와 기업이 매칭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실업 상태입니다. 예컨대 A라는 회사에서 퇴사한 뒤, B 회사로 옮겨가기 전까지 몇 주 혹은 몇 달간의 공백 기간이 대표적입니다.
    2. 구조적 실업(Structural Unemployment): 산업 및 기술이 빠르게 변해, 일부 직업이 사라지거나, 지역·기술 수요가 특정 방향으로만 쏠리는 현상에서 비롯됩니다.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전환하면서 기존 내연기관 기술 종사자들이 직장을 잃을 위험이 높아지는 것이 한 예입니다.
    3. 제도적 실업(Institutional Unemployment): 임금 결정구조나 노동시장 규제, 복지 제도, 심지어 회사 관행 등으로 인해, 특정 구직자들이 노동시장에 쉽게 진입하지 못하거나, 기업이 인력을 채용·해고하는 데 제약을 받음으로써 발생하는 실업입니다.

    프리드먼은 통화정책(금리 조정, 통화량 조절 등)만으로는 장기적으로 실업률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뜨릴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실업률을 자연실업률 아래로 ‘꾸준히’ 낮추려 하면 물가 상승(인플레이션) 같은 부작용이 심해진다는 이론입니다. 이 시각에서 자연실업률은 ‘통화정책으로 넘어설 수 없는 장기적 하한선’으로 간주됩니다.

    낮은 자연실업률의 의의와 맹점

    이 이론에 따르면, 특정 국가가 “구조적·마찰적 실업이 적다”는 뜻은 노동시장이 효율적으로 돌아가고, 인력 배치가 빠르게 이뤄진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는 대체로 낮은 자연실업률을 보여왔는데, 이는 고용 유연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본주의 문화와 제도에 기인합니다. 기업이 필요하면 신속히 인력을 채용하고, 필요가 없으면 비교적 손쉽게 해고하는 구조가 정착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낮은 실업률을 유지하는 대가로, 근로자가 ‘항상 이직 가능성’에 대비해야 하는 불안정한 노동환경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임금 협상력이 부족한 구직자는 급여가 낮아도 일단 취업하고 보며, 언제 해고될지 모르므로 소비를 무리하게 늘리지 못합니다. “실업률이 낮으니 일자리가 풍부하네!”라는 통계 뒤에는, 실제 임금 수준이 정체됐거나, 비정규직·초단시간 근무가 급증하는 반대 그림이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또, 공식 실업 통계에 잡히지 않는 ‘실망실업자’, ‘장기 아르바이트 노동자’, ‘취업준비생’ 등이 상당수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근무 여건과 자연실업률의 관계

    낮은 실업률의 이면: 고용 유연성과 근무 환경

    고용이 유연하다는 말은 긍정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실상은 ‘기업이 근로자를 쉽게 내보낼 수 있고, 같은 업종에서 이직이 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기가 조금이라도 나빠지면, 임시직과 계약직부터 먼저 해고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상시적인 해고 리스크 속에서 근로자는 임금인상을 요구하기 어렵고, 고용주도 임시방편 채용 형태로 인력을 충원하기 쉽습니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저비용으로 운영하겠지만, 근로자들의 삶은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낮은 자연실업률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노동시장’을 의미하려면, 유연성뿐 아니라 사회적 안전망이나 재취업 지원 제도가 탄탄해야 합니다. 예컨대 북유럽 국가들은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라 하여, 해고는 비교적 자유롭게 허용하되, 실업자가 된 후 재교육이나 전직 지원, 실업급여를 받는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자연실업률이 낮으면서도 근로자들이 너무 큰 불안을 느끼지 않고 경력을 쌓을 수 있습니다. 반면, 제도적 안전망 없이 고용만 쉽게 끝났다 시작됐다를 반복한다면, 근로자의 삶은 끊임없는 위기감에 놓입니다.

    예시: 단시간 노동과 실업률 착시

    실업률이 낮다고 해서 모두가 풀타임 안정적 일자리를 누린다고 보장되지 않습니다. 간단한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한 국가에서 경제활동인구 100명 중 95명이 취업하고, 5명이 실업 상태라면 실업률은 5%입니다. 그런데 그 취업자 95명 중 40명은 ‘주당 10시간 이하’의 초단시간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생활하고, 나머지 인원들도 고용이 불안정한 형태라면 어떨까요? 표면적인 실업률 5%만 놓고 “노동시장이 건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실제 통계청이나 국제 노동기구(ILO)가 제공하는 통계 중에는 ‘불완전 고용(Underemployment)’이라고 해서, 노동자가 원래 원하지만 충족하지 못한 수준의 근무시간이나 근로 조건으로 일하는 상태를 별도로 파악하려 합니다. 이런 수치를 함께 봐야 실제 노동시장의 질적 수준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연실업률이 낮아 보이지만, 불완전 고용 문제가 심각하다면, 그 경제는 사실 근로 환경이 취약한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표: 자연실업률 vs. 근무환경 비교 요소

    아래 표는 자연실업률이 낮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장점과 그 이면에 잠재할 수 있는 문제점을 간단히 정리한 것입니다.

    구분장점잠재적 문제
    낮은 자연실업률– 구직자에게 일자리 기회가 많아 보임- 이직과 채용이 빠르고 효율적– 해고가 쉬워 근무 안정성 부족- 비정규직 및 저임금 노동 확산- 임금 협상력 약화
    근무여건(질적 측면)– 유연성+안전망이면 근로자 만족도↑- 기업 경쟁력 향상 가능– 사회보장 미비 시 근로자 불안↑- 임시직/초단시간 근무로 통계 착시

    위 표에서 보듯, 자연실업률이 낮으면 표면적 고용지표는 좋아 보이지만, 그 뒤에는 여러 제도적 조건이 따라붙어야 근로자가 안정적이고 만족스러운 환경을 누릴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안전장치 없이 기업 편의만 중시한다면, 노동시장은 유연해도 근로자들이 열악한 상황에 처할 위험이 큽니다.


    자연실업률과 임금, 그리고 물가의 함수 관계

    임금 인상과 실업률의 역관계

    경제학에서는 실업률이 낮을수록 근로자 임금이 오르기 쉬운 것으로 가정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노동시장이 빡빡(타이트)하면, 기업이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게 되므로 임금 인상으로 구직자를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이 단기간 이어지면 근로자는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낮은 자연실업률임에도 불구하고 임금이 정체된 사례가 빈번히 나타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기간(장기 디플레이션)도 실업률이 상대적으로 낮았으나, 기업이 임금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노동조합 약화, 비정규직 증가 등 다양한 구조적 요인으로 인해 임금 협상력이 약해진 근로환경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즉, “실업자가 적다 = 구직자가 희소하니 임금이 오른다”는 고전학파 논리가 무색해지는 상황이지요. 애초에 기업이 단기간 쓰고 버릴 수 있는 초단기 계약직을 선호하고, 구직자들도 생계 때문에 마지못해 들어가서 근무한다면, 최저임금 수준에 가까운 보수가 시장에 만연해져도 굴러갈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실업률은 낮아도 임금 수준이 정체되는 역설이 벌어집니다.

    임금 정체가 물가에도 영향

    물가 상승(인플레이션)은 흔히 “노동비용이 올라가면 제품 가격에도 반영되어 물가가 오른다”라고 설명됩니다. 그래서 실업률이 낮아지고 임금이 오르면, 인플레이션도 함께 오르는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 관계가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많은 선진국에서는 실업률 하락에도 물가상승률이 꿈쩍 않는 현상이 목격되었습니다. 노동자가 임금을 높게 요구하기 어려운 환경 때문이죠.
    이렇게 임금 협상력이 약한 노동시장은 저물가·저성장을 고착화할 수 있습니다. 기업은 비용이 일정하니 일단 안정적으로 이윤을 유지하겠지만, 전체 경제의 총수요가 충분히 늘지 못해 오히려 침체가 길어지거나 디플레이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커집니다. “낮은 실업률 → 임금 인상 → 물가 상승”이라는 매뉴얼이 자동으로 작동하지 않는 세상이 된 셈입니다. 그래서 자연실업률이 낮은데도, 경기가 활발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사례가 드물지 않게 나타납니다.


    노동시장의 질과 제도적 맥락

    해고 유연성과 복지 제도의 상호 보완

    미국이나 영국 등은 해고가 비교적 자유롭고, 자연실업률도 낮게 책정되는 반면, 근로자의 사회복지·실업급여 수준이 유럽 대륙이나 북유럽보다 상대적으로 빈약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자는 늘 해고 위험에 맞서 스스로 준비해야 하며, 경기가 나빠질 때 가장 먼저 임시직부터 대량 해고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자연실업률 수치는 낮아도, 이는 “노동시장이 효율적이라서”라기보다는 “계속해서 일자리가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이 빠른 탓”에 생기는 결과일 수 있습니다.

    반면 덴마크나 네덜란드처럼 해고가 쉽되, 재취업 지원과 실업급여가 충분히 제공되는 모델에서는, 낮은 실업률이 곧바로 근로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이 경우, 자연실업률이 낮다는 것은 실제로도 근로조건이 안정적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기업이 해고를 해도, 근로자는 실직 기간에 국가 지원을 받고, 재훈련을 통해 새로운 직장을 비교적 쉽게 찾기 때문입니다. 즉, “자연실업률이 낮다”는 지표를 해석할 때, 복지와 제도적 맥락을 무시하고 보면 상당히 왜곡될 수 있습니다.

    초단시간·플랫폼 노동의 증가

    최근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하면서, 배달·운전·가사도우미 등 플랫폼 노동 형태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앱을 통해 자율적으로 일감을 구하고, 원하는 시간만큼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안정적인 근로계약이나 법적 보호가 부족하다는 단점도 존재합니다. 이 흐름이 전반적 노동시장 통계에 반영되면, 자연실업률은 낮아지더라도 이들 플랫폼 노동자는 기존 고용 보호장치에서 소외될 수 있습니다.
    노동법이 예전에 상정한 ‘정규직·상용직’ 위주 제도가 플랫폼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해야 할지 확립되지 않은 상태라면, 통계 속 실업률은 겉으로 좋아 보이지만 근로자들은 개별 계약자로 취급되어 소득이나 복지안정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산업구조와 테크놀로지 변화에 따라 노동시장 풍경이 달라지는 만큼, 자연실업률 자체로 노동시장의 ‘질’을 평가하기에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점이 재확인됩니다.


    마무리: 낮은 자연실업률을 바라보는 바람직한 시각

    자연실업률은 노동시장 연구에서 유용한 지표이긴 하지만, 정책 담당자나 기업, 그리고 근로자 입장에서는 이를 맹신하거나 과대평가해서는 곤란합니다. 자연실업률이 낮은 것만으로 “우리 사회는 거의 완전고용이니, 근로환경도 좋고 임금도 높은 선진 시장이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자연실업률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다고 해서, 반드시 해당 국가 노동환경이 열악하다고 단정하기도 이릅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업률을 구성하는 요인이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근로자는 얼마나 안정되고 적절한 대우를 받고 있나?”라는 구체적 관점입니다.

    근로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이직할 때도 실업급여나 재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짧고 안전한’ 전환 기간을 보낼 수 있어야, 낮은 자연실업률이 곧바로 ‘노동시장 호황’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자격이 생깁니다. 그렇지 않다면, 자연실업률이 낮아도 임시직·초단시간 근무가 만연하거나, 근로자가 쉴 새 없이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찾아 전전하는 불안정 상태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시장에서 실업률은 낮을 수 있지만, 근무 여건은 최악일 가능성이 큽니다.

    정책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근로자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는 균형 잡힌 제도 설계가 필수입니다. 해고는 자유롭게 허용하되, 그만큼 재취업 지원이나 복지를 두텁게 하는 방식이 이상적입니다. 또한 임금 격차 완화, 불완전 고용 방지, 플랫폼 노동자 권익보호 등 세세한 영역을 챙겨야 노동시장이 “낮은 실업률”과 “양질의 근무환경”을 함께 달성할 수 있습니다. 자연실업률 지표는 전체 고용 상태를 대략 가늠할 수 있는 출발점일 뿐, 노동시장의 진정한 질과 근로자 삶의 질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훨씬 더 다층적인 분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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