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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우리에게 주는 교훈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세계가 주목할 만한 호황을 누렸습니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전례 없이 치솟았고,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까지 갖추며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 초 거품이 꺼지자 상황은 180도 바뀌었습니다. 가파르게 상승하던 자산 가격이 일시에 폭락했고, 그 후유증으로 일본 경제는 10년 넘게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를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부르며, 한때 ‘경제대국’으로 칭송받던 일본이 왜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졌는지 많은 나라가 주목했습니다. 자산 시장이 한 번 붕괴하면 얼마나 심각한 파장을 몰고 오는지, 또 중앙은행과 정부가 부적절한 타이밍에 대응하면 경제 주체들이 얼마나 긴 시간 고통받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오늘날 많은 국가들이 부동산·주식·채권 같은 자산 가격의 급등락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귀중한 타산지석이 되었습니다. 즉, 어떤 식으로든 자산 가격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부의 분배나 실물 경제에 왜곡이 생기고, 결국 거품이 꺼질 때 막대한 후폭풍이 몰려온다는 교훈입니다. 일본이 겪은 장기 침체의 원인과 과정을 살펴보면, 자산 시장 관리가 왜 중요한지, 또 정책 당국이 어떤 시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본 경제의 호황과 거품 형성 배경

    1980년대 일본은 수출 주도형 경제를 통해 경이로운 성장을 달성했습니다. 전자·자동차·철강 등 제조업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선보였고, 세계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무역흑자를 쌓게 되었고, 엔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점점 더 강세를 보였습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일본 제품이 자국 시장을 잠식한다고 경계심을 높였는데, 그만큼 일본의 위상이 커지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85년에는 ‘플라자 합의’를 통해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엔화 절상을 촉진하는 협정을 맺었습니다. 그 여파로 엔화 가치가 급등했고, 일본 기업들은 수출 가격 경쟁력에서 다소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해외 자산을 대거 사들일 수 있을 정도로 일본의 구매력도 높아졌습니다. 자금이 풍부해지자 국내 금융기관들은 부동산 개발이나 주식 투자 등에 과감하게 뛰어들었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일본 땅을 다 모으면 미국 전역을 살 수 있다”는 농담이 떠돌 정도로 부동산 가격을 치솟게 했습니다.

    당시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일본은행)은 저금리 정책을 유지했고, 시중 유동성도 풍부했습니다. 기업들은 쉽게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했고, 개인들도 주식을 사기 위해 대출을 일으켰습니다. 미디어에서는 “일본은 언제까지나 번영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확산되었습니다. 해외에서도 일본 금융기관이 자유롭게 대출을 제공받을 수 있었고, 일본 기업이 전 세계 주요 빌딩과 미술품 등을 높은 가격에 사들이는 일이 자주 보도되었습니다. 그만큼 ‘돈이 넘치는’ 분위기가 경제 전반에 깔려 있었고, 이것이 거품(버블)을 더욱 부풀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자산 시장의 과열과 버블 절정

    부동산 가격 폭등

    이 시기 일본 부동산 가격 상승세는 가히 ‘폭발적’이라는 표현이 걸맞았습니다. 특히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의 상업용지 가격은 해마다 수십 퍼센트씩 오르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대지(토지)의 거래가 단순 투자 대상이 되어버리면서, 실질적으로 활용하기도 전에 매매차익을 노리고 사고파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 때문에 기업은 물론 개인 투자자, 심지어 농가까지 ‘땅을 팔면 평생 먹고살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만연했습니다.

    부동산 신용이 크게 늘자 이를 담보로 한 대출도 마구잡이로 이뤄졌습니다. 상업 은행이나 투자은행들은 ‘부동산은 절대 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에 가까운 가정하에,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대규모 자금을 빌려주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건설업계 역시 특수를 누렸고, 대형 개발 프로젝트가 잇달아 발표되었습니다. 일본 경제가 밝은 미래를 그리는 것처럼 보이던 시기였지만, 이미 내실 없이 ‘가격 상승’에만 기대는 거품이 상당히 끼어 있었습니다.

    주식 시장의 급등

    부동산과 더불어 주식 시장 또한 유사한 과열 양상을 보였습니다. 닛케이225지수는 1980년대 중반부터 1989년 말까지 천문학적으로 상승했습니다. 많은 일본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주식을 사두면 무조건 오를 것”이라는 낙관론이 팽배했습니다. 기업들도 자사 주가가 오르니, 그 주식을 담보로 또다시 대출을 일으켜 투자하는 행태가 퍼졌습니다.

    당시 금융기관들은 이처럼 대출을 통한 투자가 ‘안전한 수익’을 보장한다고 믿었습니다. 주가가 계속 오르니까 담보 가치가 높아지고, 대출 상환 능력도 문제없을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돌아가는 순환 고리가 해가 바뀌어도 멈추지 않으며, 사람들은 한껏 들뜬 기대감 속에서 자산 시장이 무한히 상승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거품이든 끝없이 부풀어나기만 하는 법은 없었고,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거품의 붕괴와 긴 불황의 시작

    버블 붕괴 시그널

    1989년 말 일본은행(BOJ)은 과열된 자산 시장을 우려하여 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너무 늦긴 했으나, 그나마 통화 정책을 조정해 거품을 누르려 했던 것입니다. 금리가 오르자 대출을 통해 투자를 확대하던 자산 시장의 흐름이 급격히 반전되었습니다. 더 이상 이전 같은 저금리 환경이 보장되지 않자, 빚을 내 부동산이나 주식을 사던 투자자들은 한순간에 불안감을 느꼈습니다. “혹시 지금이 가격의 정점이 아닐까?”라는 의심은 순식간에 번졌습니다.

    1990년 초부터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고, 도쿄 부동산 가격도 서서히 조정을 보였습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일시적 조정’ 정도로 여겼지만, 하락세가 지속되며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번졌습니다. 대출을 많이 끼고 무리하게 투자한 개인과 기업은 담보가치가 떨어지자 압박을 받았고, 은행들도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위기에 처했습니다. 미리 자산을 정리하지 못한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막대한 손실을 보았습니다.

    장기 침체의 여파

    버블 붕괴 후 일본 경제가 보인 가장 큰 특징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의 장기화)’와 ‘경제 성장의 정체’였습니다. 부동산과 주식 가치가 폭락하면서, 기업과 가계 모두 빚에 시달렸고, 자산 가치가 떨어진 만큼 소비 심리와 투자 의욕도 얼어붙었습니다. 수요가 약해지니 물가가 올라갈 이유가 없었고,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멈추거나 축소했습니다. 게다가 해외 경쟁도 치열해졌고, 과거와 달리 일본의 제조업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일본은행은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하려 했지만, 이미 자산 시장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사람들은 소비와 투자를 늘리기보다 현금을 쌓아두려 했습니다. 이른바 ‘유동성 함정’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람들이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고 돈을 쓰지 않으니, 은행이 아무리 돈을 풀어도 실물 경제에는 활력이 도는 대신 예금 형태로 묶이거나 국채 매입에 그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시장 유동성 자체는 충분해 보여도, 돌아가는 실물 거래는 위축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었습니다.


    정부와 일본은행의 대응, 그리고 한계

    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 확대

    버블 붕괴 직후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은 금리를 내렸습니다. 이미 폭등한 자산 가격이 빠르게 하락해버리면 금융 시스템 자체가 흔들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품 형성 시기를 너무 오래 방치한 탓에, 금리 인하 타이밍이 늦었고 효과도 제한적이었습니다. 이후에도 장기간 제로금리 정책(금리를 0% 수준으로 인하)을 유지하는 ‘초완화 통화정책’을 폈지만, 위축된 심리를 되돌려놓기엔 부족했습니다.

    정부는 재정 지출을 확대해 경기 부양을 시도했습니다. 대규모 공공사업, 건설 경기 부양책 등을 연달아 발표했지만, 이 역시 사람들이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이상 ‘돈이 돌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재정 지출을 늘린 만큼 정부 부채가 빠르게 불어났고, 장기적으로 재정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라 살림이 악화되면, 민간 경제 역시 세금 인상이나 성장률 둔화 등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기 쉽습니다.

    부실채권 정리와 은행 구조조정

    자산 가격 하락으로 건설·부동산·금융 업계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은행 시스템이 부실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대출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은행은 도산 위기에 내몰렸고,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가는 금융 공황이 닥칠 것을 우려해 공적 자금을 투입해 구제했습니다. 또한 은행 합병이나 파산 처리 등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긴 했으나, 일부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부실 기업을 적절히 퇴출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부실 정리 과정이 지연되면서, ‘좀비 기업’이라고 불리는 자생력이 없는 기업이 은행 지원으로 겨우 연명하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이는 일본 경제 전반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시장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보다는 낡은 구조에 묶인 상태로 시간을 허비하게 된 큰 요인이었습니다. 만약 버블이 꺼지자마자 신속하게 부실 채권을 정리하고, 비효율적 기업을 퇴출했더라면, 더 빨리 반등할 수 있었다는 평가도 많습니다.


    디플레이션과 소비 위축, 고용 문제

    디플레이션의 폐해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이 겪은 가장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디플레이션이었습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싸지니 좋은 것 아닌가?”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제론 기업의 매출과 이윤이 줄어들고 임금도 오르기 어렵다는 악순환을 초래합니다.
    물가가 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심해지면, 소비자들은 지출을 미루게 됩니다. “앞으로 더 싸질 텐데 지금 굳이 사야 할까?”라는 심리가 확산되면, 경제 전체의 거래량과 생산이 줄어들고, 기업은 감원을 통해 비용을 줄이려 합니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임금이 정체되면, 더욱 소비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일본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이 고리를 끊어내기까지는 매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고용 환경의 변화

    일본은 전통적으로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을 특징으로 하는 고용 문화를 발전시켜왔습니다. 버블 시기에는 기업이 인력을 무제한으로 흡수해도 문제가 없을 만큼 호황이었으나, 버블 붕괴 이후 경영난이 심각해지자 인력 구조조정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젊은 세대가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졌고, 파트타임·프리터(freeter) 등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사회적 불안을 가중시켰습니다.
    취업 문이 좁아지자 청년층의 소비 여력도 낮아졌고, 장기적으로 인구 감소나 생산성 하락과 맞물려 일본 경제 전반의 활력이 떨어졌습니다. 버블 붕괴 전후 세대를 비교할 때, 희망에 차 있던 시기와 ‘위축된’ 분위기로 옮겨가는 변화가 극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경제성장률 지표 이상의 사회·문화적 파급효과로도 이어져, 결혼·출산률 하락, 지방 소멸 문제 같은 복합적 현안을 야기했습니다.


    한편, 그래도 잃어버린 10년 동안 일본이 유지한 강점

    제조업 및 기술력 유지

    일본은 장기 침체 속에서도, 여러 제조업 분야에서 탄탄한 경쟁력을 유지했습니다. 자동차, 전자, 정밀기계, 화학, 소재 분야 등은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고품질 브랜드 이미지를 자랑했습니다. 이는 버블 붕괴로 금융권이 타격을 입었어도, 기술력과 생산노하우 자체가 일시에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기업들 중에는 위기를 계기로 경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재정비한 사례도 있습니다. 도요타나 혼다 등 자동차 업체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꾸준히 판매량을 확대하며, 엔화 변동성에 대응해 현지화를 적극 추진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음에도, 특정 산업 분야가 완전히 몰락하지 않고 버티는 데 기여했습니다.

    사회 안정과 품질 관리

    장기 불황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는 비교적 큰 혼란 없이 안정을 유지했습니다. 범죄율이 급격히 치솟거나, 정부 체제가 붕괴하는 극단적인 모습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일본의 문화적 특성, 공동체 의식, 정치적 합의 구조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한 결과로 평가됩니다.
    또한 디플레이션 시기에도 일본 기업들의 ‘품질 관리’와 ‘서비스 수준’은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제품을 구매해본 소비자들은 “일본산은 고장률이 낮다” “사후 관리가 훌륭하다”라는 인식을 유지했고, 이 점이 일본 기업들이 해외 시장에서 꾸준히 명맥을 이어가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물론 경제 전반의 역동성을 되찾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산업 기반과 기술 경쟁력은 잃지 않았다는 것이 잃어버린 10년의 또 다른 측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의 교훈: 자산 시장 안정이 왜 중요한가

    자산 거품의 폐해

    일본의 사례에서 가장 큰 교훈은, 자산 가격이 과도하게 치솟았을 때 미리 위험을 제어하지 않으면 파국이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부동산과 주식이 오를 때는 투자자뿐 아니라 금융기관, 건설업, 소비재 산업이 모두 호황을 누리며 단기간에 경제가 ‘팽창’하는 듯 보입니다. 그러나 그 기초가 부실한 ‘버블’이었다면, 한 번 붕괴할 때 사회 전반에 충격파가 몰려옵니다.
    자산 시장이 폭락하면, 담보가치 하락으로 기업과 개인의 부채가 순식간에 부실채권으로 전환되고, 이는 은행 시스템을 위기로 몰아넣습니다. 은행이 건전성을 잃으면, 다시 대출을 축소해 실물 경제가 더욱 움츠러드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부동산은 절대 안 떨어진다”거나 “주식은 항상 우상향”이라는 식의 편향된 기대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본 버블 시대가 극명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정책 대응 타이밍의 중요성

    버블을 방치했다가 뒤늦게 금리를 올리거나 규제를 강화하면, 충격이 더 크게 돌아온다는 교훈도 뚜렷합니다. 일본은행은 1980년대 말에야 비로소 기준금리를 인상했는데, 그 시점에는 이미 자산 가격이 지나치게 상승해 있었고, 투자자들의 ‘매도 러시’를 촉발한 측면이 큽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상승기에 적절한 신용 규제와 모니터링이 필수적이었다는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또한 거품이 꺼진 뒤에는 부실채권을 신속히 정리하고, 잘못된 투자를 거둬내는 금융·기업 구조조정 과정을 과감하게 추진해야 했으나, 일본 정부는 당장 대규모 파산 사태를 우려해 미봉책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결과 부실이 덜어지지 않은 채 장기간 경제가 침체되고, 국민 심리는 더욱 위축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빠른 구조조정이 경제 고통을 단기에 집중시키지만, 그 이후에는 반등 기회가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우리 경제에의 시사점: 관리와 균형의 과제

    한국 등 다른 국가와의 유사성

    많은 전문가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분석하며, 한국이나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이 유사한 경로를 밟을 수 있다고 경고해왔습니다. 특히 한국의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 규모가 빠르게 커진 시기에 “일본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습니다. 자산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고, 주택 투기나 대출 과잉이 만연하면 언젠가 큰 조정을 맞을 것이라는 우려입니다.
    이 같은 경고가 나온다고 해서, 모든 나라가 일본처럼 장기 침체에 빠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국가마다 인구구조, 산업 경쟁력, 정책 대응 속도, 외환 보유고, 환율 체제 등이 다릅니다. 하지만 거품 붕괴가 초래할 수 있는 심각성을 미리 인지하고, 금융 건전성과 부동산 시장 안정, 기업의 자생력 확보 등을 위해 선제 조치를 취하는 건 반드시 필요합니다.

    중장기 성장전략과 구조개혁

    일본이 버블 붕괴 이후 경제 활력을 회복하기 어려웠던 것은, 단순히 자산 가격 문제뿐 아니라 인구 고령화, 생산성 정체, 혁신 부족 등 구조적 요소도 겹쳤기 때문입니다. 그 교훈을 현대 사회에 적용하면, 자산 시장이 안정되어도, 산업 경쟁력과 인구·노동시장의 지속 가능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장기 저성장으로 이어질 위험이 존재한다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거품 대비책”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마련하는 구조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합니다. 인력 양성, 기술 혁신, 규제 완화, 창업 활성화, 일자리 구조 개선 등이 뒤따라야, 외부 충격이 왔을 때 빠른 회복이 가능합니다. 일본 역시 늦었지만 2000년대 이후 ‘구조개혁’을 표방했으며,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총리 시기) 등으로 양적 완화와 재정 정책을 병행해 경기 부양을 다시 시도했습니다. 결과가 완벽하지 않았지만, 장기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양한 정책 조합이 필요하다는 점은 재확인되었습니다.


    최근 흐름과 일본 경제의 재도약 가능성

    아베노믹스와 이후

    2012년 말 출범한 아베 신조 내각은 ‘세 개의 화살’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적극적인 통화 정책(양적 완화), 재정 정책, 성장 전략을 동시에 추진했습니다. 엔화를 약세로 유도해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주가 상승 효과로 가계와 기업의 자산 가치를 끌어올리려 했습니다. 이는 초기에는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디플레이션 기대가 오래 쌓여 있던 일본 경제가 단숨에 활력을 찾긴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는 꾸준히 심화되었고, 이는 내수 시장 축소와 노동력 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베 정부가 내놓은 여성·고령층 노동참여 확대나 규제완화 정책은 부분적으로 성과를 냈지만, 전반적으로 일본이 과거처럼 5%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첨단 제조나 반도체 소재, 배터리, 로봇 등 특정 분야에서는 꾸준히 혁신 노력을 기울이며, 선도 기업들을 육성하려 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와 경제 회복 시나리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일본 역시 대규모 재정 지출과 통화 완화 정책을 동원해 위기를 타개하려 했습니다. 이미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 중 하나인 정부 부채를 더욱 늘려야 했고, 일본은행은 양적 완화 기조를 더욱 강화했습니다. 다른 선진국들처럼, 위기 대응 속에서 물가 상승과 환율 변동 같은 새로운 문제에 직면했지만, 일본 경제 정책의 근저에는 여전히 ‘거품 붕괴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자산 시장에서 또다시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주의하되, 경기 부양을 위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 있는 셈입니다. 일본 정부와 중앙은행이 이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균형 있게 풀어갈지, 그리고 인구 감소·고령화가 더욱 심각해지는 미래에 어떤 대책으로 생산성을 높일지에 따라, 일본의 재도약 가능성이 평가받을 것입니다. 정답은 없지만, 잃어버린 10년의 교훈을 바탕으로 지나친 버블 형성이나 구조조정 지연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는 대체로 의견이 모입니다.


    결론과 적용 시 주의점

    잃어버린 10년은 한때 세계 2위 경제대국이던 일본이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수년간 장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한 기간을 일컫습니다. 초저금리와 무제한 대출을 배경으로 부동산과 주가가 폭등했지만, 이 거품이 꺼지자 금융 시스템이 부실해지고, 디플레이션과 저성장이 반복되었습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뒤늦게 금리를 인상하거나, 부실채권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침체가 더 깊어진 측면도 큽니다. 이 경험은 자산 시장 안정과 선제적 리스크 관리를 왜 강조해야 하는지, 그리고 구조개혁 없이 단기 부양책만 남발하면 경제가 어떻게 정체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는 디지털 혁신, 환경 변화, 지정학적 갈등 등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자산 가격의 급등락은 여전히 핵심 관심사 중 하나입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사례를 숙고해보면, 거품 형성을 미리 억제하고, 경제 체질을 튼튼하게 가꾸는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재차 느낄 수 있습니다. 또한 만약 이미 거품이 일부 끼어 있다면, 부작용이 더 커지기 전에 금융·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장기 성장 전략을 갖추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점을 되새겨볼 때입니다.
    자산 거품은 단순히 투기 열풍을 일으킬 뿐 아니라, 잘못된 자원 배분으로 인해 실물 경제의 효율성까지 훼손합니다. 그리고 그 거품이 터졌을 때 발생하는 충격은, 전 사회가 짊어져야 할 만큼 방대합니다. 따라서 “언젠가 오를 거다” “절대 안 떨어진다”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는 시장일수록, 정책 당국과 투자자 모두가 일본 사례를 떠올리며 균형 잡힌 대응을 모색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10년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에서나 다시 나타날 수 있는 현실적 경고이기 때문입니다.